26살이 되서야 김치를 먹을수 있게된 남자
나는 김치를 못 먹는 사람이었다.
한국사람치고 김치 못 먹는 사람이라하면 서양식이 상당히 보급된 현대라 하더라도 꽤나 희귀한 사람취급 받곤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못 먹는 건 아니고 먹으라 하면 먹겠지만, 서양 사람들이 당연스레 빵에는 버터나 잼을 곁들이거나, 한국 사람들이 밥에는 당연히 김치를 곁들이는 정도로 일상적인 식습관으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편식이 심했던 어렸을 적 식습관이 남아서 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난 한달내내 맥도널드 신세를 질 수도 있을 정도로 양식에 더 익숙했더랬다.
그래서 회사에서고 군대에서고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나를 보며 의아해하며 '김치 안 먹어?'라고 물어보는 일이 꽤 있었다.
(의외로 규율이 엄하다는 군대에서는 사회에서 보다도 그런 질문하는 사람이 적었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군대김치가 상당히 맛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군대갔다오면 편식이 고쳐진다는 일반적인 속설도 무사히(?) 넘겨버린채 이 나이가 되었기에 앞으로도 김치랑은 인연이 없는 인생을 살겠구나 싶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 여름, 아는 형과 옷구경 한답시고 명동시내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가 허기져서 들린 설렁탕집에서 깨지고 말았다.
설렁탕하면 나로서야 그 깔끔하게 하얀 국물에 심플하게 소금과 밥만 넣어서 먹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숟가락을 들었다마는,
그때 형이 '설렁탕에 이게 빠지면 시체지~' 라면서
대량의 숙성김치를 동의도 없이 나의 설렁탕 그릇에 대량 투여해버린 것이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나의 깔끔하게 뽀얀 국물이 핏빛(당시로선 정말 그렇게 보였다;)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아... ...다 된 밥에 재빠트렸구나...'라는 좀 전혀 다른 속담이 떠올랐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꼬꼬마 시절이었다면야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면서 땡깡을 부렸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비싼 밥이니까 먹긴 먹어야지.
하고 눈딱 감고 한술떠서 입에 넣었는데,
어? 이게 매콤새콤하면서도 의외로 먹을만 하다.
게다가 더욱 신기한 것은, 한번 그렇게 먹기 시작하니까 머릿속에서 그 강렬한 맛이 잊혀지지가 않아서 계속 김치를 집어먹게된느 오묘한 중독성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몹시도 더웠던 여름날, 에어컨도 안나오는 설렁탕 집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앉은 자리에서 항아리 김치를 한통을 싹 비워가며 먹은 설렁탕 한그릇은 나에게 묘한 감동을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김치 없이는 밥 못먹는 김치 중독에 빠져버렸다.
집에 혼자 있을때 맛은 무시하고 의무적으로 허기만 달래기 위한 식단이었던, 햇반에 레토르트 3분 햄버그도 거기에 잘 양념한 햇김치 한종지만 곁들이면 이상할 정도로 충실한 느낌의 제대로된 한끼 식사로 변하곤 했다.
마침 그렇게 되고 얼마 안있어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꽤나 당황스러웠다.
라멘에 가츠동에 오코노미야끼 등등에 환장했었던 원래 식성의 나였다면 당연히 즐거운 식도락 여행이 되었어야 했겠지만, 여름의 김치 쇼크(?)를 거친 직후의 나로선 아무리 맛 좋다는 가게에 가도 식사를 하는 내내, 그리고 다 먹고 나서까지 뭔가 빠진 것 같은 석연찮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20년 넘게 고수해온 식습관이란게 그리 쉽게 바뀔리는 없는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던 습관이 불과 한달만에 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란 세상에 없다'라는 평범한 교훈을 떠올려주기도 하다마는, 그만큼 김치라는 반찬의 매력이 강렬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외국 음식이 너무나 좋았던 한때는, 음식때문에라도 차라리 미국이나 일본에 건너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나였지만, 이제는 결코 그럴 수가 없게 되버렸다.
왜냐면 나는 이미 '김치'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p.s - 그런 것 치고는 고추장이나 쌈장에는 여전히 익숙해 지지 못했지만, 앞으로 조금씩 도전해 봐야겠다. 또 어떤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at 2009/11/0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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